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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한국석유화학산업의 발전

  • 석유화학산업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천연가스를 원료로 고무제품의 원료인 카본블랙을 만든 1872년을 석유화학산업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미국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사가 열분해 가솔린을 제조할 때 발생하는 프로필렌에서 이소프로판올(Isopropanol)을 합성하는 데 성공한 1918년을 근대적 석유화학산업의 기원으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 후 많은 기술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빠른 속도로 석유화학산업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는 동안 선진국을 중심으로 합성고무 · 합성수지 · 합성섬유 등 다양한 제품이 활발하게 개발됨에 따라 그 원료를 제공하는 석유화학산업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1970년대에는 새로운 공정기술이 개발되고 기존 소재를 대체하는 신소재와 그 신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속속 개발되면서 석유화학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신개념의 제품들도 잇따라 선을 보였다.

    특징
    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카바이드(Carbide, 탄화칼슘)법으로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해내면서 부터이다. 당시만 해도 시설규모는 매우 영세한 수준에 머물렀으나, 1960년대 후반 들어 정부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석유화학공업단지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석유화학산업이 본격화되었다.
    업스트림 부문은 대한석유공사를, 다운스트림 부문은 충주비료를 주축으로 하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건설 사업은 1968년 3월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70년에 대한석유공사가 울산정유공장 내에 방향족계 원료인 BTX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1972년 10월에는 에틸렌 기준 연산 10만 톤 규모의 나프타 분해공장과 9개 계열공장이 완전 가동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기초 유분에서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물론 본격적인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정부가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중화학공업 육성시책을 펼친 데 힘입어 관련공장들이 속속 신설 및 증설되었다. 특히 1979년 10월에는 에틸렌 기준 연산 35만 톤 규모의 나프타 분해공장을 포함한 5개사 12개 공장으로 구성된 여천석유화학단지가 준공돼 생산능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1990년 1월 석유화학산업 투자자유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새로 진입하고 기존 업체들의 신규 투자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져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이전의 독과점적 생산체제에서 경쟁적인 생산체제로 전환되었다. 또한 기초원료의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나고 다수의 업체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절감을 위해 관련 유도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우리나라는 1993년에 이미 에틸렌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생산국으로 급부상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연간 900만 톤의 에틸렌 생산능력과 5.3%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수출액도 447억 달러를 기록해 반도체, 자동차, 일반기계에 이어 국내 4위의 수출품목에 올라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사우디에 이어 세계 4위의 석유화학산업국으로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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