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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

기업공개 및 재무건전성 확보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기업공개 및 재무건전성 확보

  • 주식공모 및 증권거래소 상장

    대한유화는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7월 23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회사정리절차의 종결처분을 받아 법정관리에서 졸업했다. 1993년 8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4년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유화는, 이정호 회장과 정창순 사장, 이순규 부사장 등 톱 매니지먼트의 진두지휘 아래 경영체제를 재정비하는 한편 재도약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석유화학시장의 경기가 침체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대한유화는 1995년 이후 매년 흑자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는 중이어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심기일전하여 재도약에 나선 대한유화는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금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기업공개를 실시하기로 했다. 1989년 2월 신규 나프타분해 사업자로 선정될 당시 적절한 시기에 기업공개를 단행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어, 이번 기업공개는 정부와의 약속을 이행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기업공개 방침을 정한 대한유화는 LG증권을 상장 주간사로 선정했다. 그리고 1999년 6월 1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1차로 48명, 2차로 103명 등 총 151명의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기관투자자 등을 초청해 기업투자설명회를 가졌다. 대한유화는 이들이 회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며 우호적인 기업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회사의 현황과 경영전략 등을 소개했다. 또 공장 및 기술연구소를 탐방하는 견학도 실시했다.

  •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1999년 7월 14~15일 양일간 공모주 청약이 진행되었다. 공모주식 수는 총 246만 주, 액면가 5,000원, 주당 발행가액은 2만 5,000원으로 결정되었다. 청약경쟁률은 기관투자가가 9.7 대 1, 일반투자자가 3.7 대 1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기대치를 웃도는 매우 높은 경쟁률이었다. 그만큼 대한유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1999년 7월 29일 기업공개 등록이 완료되고 8월 11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마침내 첫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날 거래가격은 공모가보다 훨씬 높은 3만 2,200원에 형성돼, 대한유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거듭 증명해 주었다. 투자자들은 법정관리에 있던 기업이 회생하여 불과 2년여 만에 상장기업이 된 것을 놀라워하며 장래의 성장가능성도 매우 높은 기업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기업공개를 통해 대한유화의 자본금은 기존의 287억 원에서 410억 원으로 늘어났다. 부채비율도 150% 수준으로 크게 낮아져 재무건전성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유화는 기업공개를 통해 미래 투자능력을 확보하고 우호적인 기업이미지와 기업신인도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기업 설명회(1999.06.)
  • 대한유화 주권 견양(1999.07.)
  • 주권 신규 상장기념식(1999.08.)
  • 우리사주조합 창립총회(1999.04.)
  • 우리사주조합 결성

    대한유화는 기업공개에 앞서 직원들이 참여하는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했다. 직원들에게 특별한 편익을 제공하여 자사 주식을 취득·보유토록 함으로써, 주인의식과 애사심을 고취하고 노사 간의 공존공영 의식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한편으로는 복지정책 차원에서 기업이익을 직원들에게도 분배하여 직원들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대한유화는 1999년 3월 24일 이사회를 열고 우리사주조합의 결성을 승인했다. 이어 4월 9일에는 임시 노사협의회를 열어 우리사주조합 결성에 관한 사항을 직원들과도 공유했다.
    우리사주조합은 825명의 직원 전원이 가입한 가운데 1999년 4월 28일 창립 대의원 총회를 열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대한유화는 기업공개를 위해 발행하는 주식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49만 2,000주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했다. 배당된 우리사주는 일반공모주와 함께 1999년 8월 11일 상장되었다.
    한편, 대한유화는 전 직원에게 상장 기념 특별상여금 100%를 지급하여 상장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 조기 상환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대한유화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는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을 조속히 변제하는 일이었다. 이는 대한유화가 법정관리를 받는 데 따른 조건이었으므로, 대한유화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중요한 과제였다.
    당초 대한유화는 1993년 9월 8일 회사재산보전처분과 1994년 4월 6일의 회사정리절차 개시 결정 이후 한일은행 등 주채권자들과 협의조정을 거쳐 정리채권 및 이자 상환 계획을 수립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95년 3월 13일 법원으로부터 회사정리계획 인가 결정을 받았다. 이 때 법원은 부채 상환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첫째, 정리담보권의 권리변경 및 변제방법으로 원금과 발생이자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분할변제하되 발생이자는 연 10%의 이율을 적용한다.
    둘째, 정리채권의 권리변경 및 변제방법으로 원금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분할변제하되 발생이자는 연 8.75%의 이율을 적용한다.
    즉, 채무변제 여부가 대한유화의 법정관리의 전제조건이었으므로, 대한유화가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을 변제하는 것은 결국 대한유화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을 조속히 변제하는 것이야말로 대한유화에게는 최우선의 과제였던 것이다.
    다행히 1991년 이후 1994년까지 4년 동안 계속되던 적자가 1995년부터 흑자로 반전되며 회생의 조짐을 보였다. 1995년에 51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1996년에 335억 원, 1997년에 21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연속해서 흑자를 실현한 것이다. 특히 1995년에는 무려 1,034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대한유화가 회생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에 힘입어 대한유화는 회사정리절차 기간 중에 최초 정리채무 원금 6,724억 원과 발생이자 3,596억 원 가운데 원금 2,225억 원, 발생이자 1,179억 원을 변제했다. 덕분에 대한유화는 법적 시한인 2004년보다 6년이나 빠른 1998년 7월 23일자로 법원으로부터 회사정리절차 종결 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정리절차 종결 이후에도 대한유화는 정리채무의 조기 상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성실하게 시행해나갔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펼쳐 매출을 극대화하는 한편 원가절감과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갔다. 또 회사의 자산을 속속 매각하여 정리담보권을 조기 상환해 이자비용을 줄여 나갔다. 2000년 2월 용잠부두 매각대금(78.4억 원), 2001년 10월과 2002년 4월 사택 매각대금(140억 원), 2002년 1월 안양하치장 매각대 잔금(36.9억 원), 2002년 10월 온산부지 일부 매각대금(78.7억 원), 2002년 11월 부두 매각대금(290억 원), 2003년 5월 우방 아파트상가 매각대금(5.2억 원) 등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이 모두 정리담보권 조기 상환에 투입되었다.
    회사가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신규 차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회사채 발행액 100억 원, ABS 1차 발행액 중 182억 원, ABS 2차 발행액 중 700억 원 등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의 정리담보권을 조기 상환한 것은 약 7억 원 정도의 이자를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한유화는 2004년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정리담보권을 상환하여 채권자 LG증권을 비롯한 채권자 대부분의 정리채권을 조기 상환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정리계획 인가 결정 당시 법원이 제시한 2005년보다 1년여 앞서 이루어낸 성과였다. 정리채권을 조기 상환함에 따라 대한유화는 약 11억 원의 이자를 줄이면서 마침내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을 종결짓게 되었다.

회사 위기극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순규 대표이사 선임(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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