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닫기

통사

위기극복을 위한 새 사업전략 추진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위기극복을 위한 새 사업전략 추진

  • 2010년대 초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2010년대 석유화학시장을 내다보는 업계의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2007년과 2008년에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면서 수익성에 큰 타격을 받은 데다, 2008년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면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유화도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과 중동국가들의 초대형 설비 신 · 증설이 예정되어 있어 시장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2009~2010년 사이에는 잠시 큰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가 앞을 다퉈 경기부양책을 들고 나온 데다, 특히 중국이 가전하향(家電下鄕) · 이구환신(以舊換新)으로 상징되는 대규모 소비부양책을 펼친 덕분이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3% 이하의 저성장에 머물렀지만 오로지 중국만이 11%가 넘는 고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중국의 부양책은 강력했다. 이와 더불어 금융위기 직후 급락했던 원재료 가격이 2009년 들어 안정세를 보인 것도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대한유화는 2009년에 매출액 1조 6,598억 원, 영업이익 1,672억 원, 그리고 당기순이익 1,208억 원을 실현하며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중국 등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따른, 일시적인 반사이익일 뿐이었다. 2010년 하반기 들어서면서부터 석유화학시장의 어려움이 본격화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융위기 상황에서 준공이 연기되었던 중동지역 국가들의 ECC(에탄크래커) 신 · 증설 공사가 완료돼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신 · 증설된 설비들은 그 규모가 에틸렌 기준으로 1,000만 톤을 넘어 공급과잉이 촉발된 데다 대부분 저가 원료인 에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 유럽 등으로 확산된 재정위기도 석유화학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요인이었다. 특히 2011년 8월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이 발행하는 채권(국채)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강등한 것은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동시에 유럽과 일본 주요 선진국들의 신용등급도 줄줄이 하락 추이를 보인 것은, 그렇잖아도 저성장 양상을 보이는 세계경제의 침체를 가속화하며 석유화학산업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들

    중동지역 국가들의 설비 신 · 증설로 2010년 이후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과잉이 현실화된 가운데, 미국의 경기부진 및 유럽발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세계 경기의 저성장 기조는 장기화할 조짐을 보였다. 이로 인해 석유화학 시장의 경기도 극심한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2012년 대한유화는 57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2008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이에 대한유화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하고자 시작한 비상경영의 연장선상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 하고 기업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대한유화는 비교적 강한 사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2009년 기준으로 온산공장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47만 톤을 유지하여 국내 총 생산능력 734만 톤 중 6%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프로필렌은 35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춰 국내 총 생산능력 539만 톤 중 6%를 차지했다. 울산공장도 47만 톤의 폴리프로필렌(PP) 생산능력을 갖춰 국내 총 생산능력 375만 톤 중 1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업계 4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특히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의 생산능력은 53만 톤으로, 국내 총 생산능력 218만 톤 중 24%를 점유하여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지속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온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업체들에 비해 생산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내실 있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견고한 사업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울산 · 온산의 석유화학공업단지에 나프타분해부터 합성수지 생산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된 생산설비를 보유함으로써 에틸렌이나 프로필렌의 시황 변화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울산공장은 독립된 6개의 폴리머공장 체제로 운영하고 있어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유리한 데다 그 중 2개의 Plant는 PP와 HDPE를 서로 병산(Swing)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폴리머 시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온산공장의 NCC 규모가 경쟁사 대비 크지 않다는 점, 울산공장의 생산품목이 PP/HDPE에 한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오래된 공장이라는 점은 대한유화의 원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임에 분명했다. 당시의 시설만으로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유화는 1998년 법정관리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10여 년 동안 정리담보권 및 정리채권을 상환하느라 별다른 투자를 하지 못했다. 국내외의 석유화학 업계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시기에 정리채권 상환에 매달리느라 충분한 시설투자를 하지 못한 것이 위기상황에서 커다란 약점이 된 셈이었다.
    물론 2000년대 들어와 사업다각화를 기치로 내걸고 탱크터미널 사업을 시작하고 OCU, BTX, 산업용가스 등의 분야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신사업의 규모도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Debottlenecking으로 부분적인 생산능력 향상을 이룬 것 외에는 규모의 경제를 얘기할 수 있을 만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칫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 사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 수립

    회사 전반에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한유화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008년에 선언한 비상경영의 연장선상에서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기업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특화제품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고부가화에 한층 더 주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UHMWPE/LiBS용 PP/PE 등 특화제품이 개발돼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특히 울산공장에서는 특화제품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면서 특화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독려했다. 이러한 전략방향은 울산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 SPP Project와 제1공장의 스크랩으로 이어져 울산공장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대한유화는 온산공장 NCC를 대규모로 Revamping하여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대규모 NCC Revamping을 진행하는 데 무리가 따르지 않도록 2012년에 EO/EG 생산설비를 먼저 신설하기로 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일환으로 사업성이 좋다고 판단되는 신규사업을 먼저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EO/EG에 대한 투자는 금액 기준으로도 NCC 신설 이후 최대의 규모였던만큼 EO/EG의 성공을 바탕으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NCC Revamping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계획대로 추진되어 그 이후 대한유화가 NCC Revamping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토대가 되었다.

top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