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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위기와 석유화학시장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세계금융위기와 석유화학시장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위기상황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997년에 시작된 IMF 외환위기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는 2008년에 닥쳐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석유화학업계에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금융위기는 2007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고, 이로 인해 금융권이 대규모 손실을 입으면서 발생했다. 특히 2008년에 세계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와 증권사 매릴린치(Merrill Lynch)가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매각된 것은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주가는 급락했고, 전 세계의 주식시장도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의 금융보험회사 중 하나인 AIG손해보험이 파산보호신청에 나서는 등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하나 둘 맥없이 무너졌다.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돼 수많은 나라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처럼 금융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들은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금융위기의 여파가 실물경제로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절박한 위기상황으로 내몰렸다.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 모터스 등 미국의 3대 자동차회사들이 정부지원을 요청하고 나서는 등 굵직한 기업들조차 생사의 기로에 섰고, UAE 두바이의 바이월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석유화학산업도 크게 위축되었다. 석유화학산업은 2003년 이후 지속적인 수요증가가 이어지던 때에 갑작스런 수요 증발로 어려움이 닥치게 된 것이다. 특히, 석유화학 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설비를 대형화해 온 터여서 그 영향이 매우 심각했다.
    석유화학업체들의 위기는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면서 현실화되었다. 국제유가가 2008년 하반기에 배럴당 140~150달러에서 40달러 초반 수준으로 급전직하함에 따라 석유화학제품 가격도 덩달아 수직하락한 것이다. 게다가 설비를 대거 증설한 중국과 중동, 동남아 국가들의 공급물량이 쏟아지면서 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까지 요동을 치고 시장수요는 급감하고 있어 업체들의 운신의 폭은 더더욱 좁아졌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에게 있어 이 같은 상황은 10년 전인 1998년의 외환위기 때도 겪어보지 못한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업계는 기업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 셈이었다. 더구나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생산량의 60~70%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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