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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김기영 명예교수 축사

대한유화 창립 50년,
그리고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정책에 참여하여 석유화학산업을 선도해온 대한유화(주)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대한유화 50년사』를 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70년 6월 2일 대한유화를 창업하고 50년동안 성장과 혁신, 그리고 도약의 시련을 거쳐 오늘의 위상에 이르기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하신 이정림, 이정호 두 선대 창업 회장님들과 이순규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전현직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존경과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유화가 석유화학산업계에서 차별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위상은 다른 기업들이 선호하는 규모와 품종의 확장전략이 아닌, 부가가치와 공급망 관리의 효율을 위해 제품선정과 품종별 포트폴리오에 포커스 전략을 기반으로 수직계열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입니다. 따라서 제품선정은 미래지향적인 품종에 집중하되 가격 경쟁보다 고객 위주의 고품질 기저를 유지하는 것이 경영의 구조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창업 직후 1972년도에 국내 최초로 PP/HDPE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합성수지 단일업종에 집중하여 이 분야의 국내산업을 리드하여 합성수지의 영역을 소비재 단계에서 공업용 수지분야로 확장하는 이분야 산업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공업용 파이프, 2차전지용 전자통신 부품 등의 생산은 합성수지의 미래영역을 예측한 품종선정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1991년과 2017년에 나프타분해공장(NCC)의 건설과 확장을 통해 포커스품종의 생산을 수직계열화에 의해 증산함으로써 경쟁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위한 신품종 LiBS 2차전지분리막 원료의 생산 시설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 회사 자체적 가치사슬(Value Chain) 확보전략의 일환이며, 대한유화가 자체 적하부두를 갖고 있고 석유화학지원공단의 유틸리티 공급망을 선도하는 것은 공급망(Supply Chain) 전략의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 석유화학업계를 넘어 다른 많은 기업들과 비교할 때 대한유화를 차별적으로 주목할 또 하나의 강점은 재무구조와 기업의 조직문화입니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15% 정도로 낮아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재무구조가 이렇게 건실한 예는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장점은 대한유화 직원들의 직장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 그리고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영환경은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경영자의 기업가정신과 신념, 그분들의 근검절약, 인본주의 등 정도경영의 경영철학이 회사 창설이래 50여 년간 체화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한유화의 창립 50년을 기념하는 뜻은 이 회사의 역사를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와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각기 자기 특유의 개성과 인격을 갖고 있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로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혼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유화를 대한유화로 만든 분들의 기업가 정신이 바로 그 기업의 정신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생물적인 수명이 있지만 기업에는 그런 수명의 한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을 설립하고 키워서 성공적으로 기업가 자신의 정신을 영원히 사회에 남기고 인류에 기여하는 것이 기업가들의 비전이며 이것이 또한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 역사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묶는 대화의 실체이기 때문에 대한유화를 이해하려면 과거에 창업자들의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정림 회장님(1913-1990)은 20년간, 이정호 회장님(1922-2011)은 41년간 생의 가장 중요한 기간을 대한유화 창업과 발전에 헌신하셨고 현 이순규 회장님은 이미 30년을 대한유화와 함께 살아오셨습니다. 설립에 참여하신 이정림과 이정호 회장님은 해방 전후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업가들입니다. 이분들은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사회가 강제로 개화의 파도를 맞게 된 직후, 농업위주에서 벗어나 상업과 공업이 빠르게 확산한 시기를 만나 사업에 투신한 1세대 선구자로 활약하셨습니다. 1920-30년대 당시 서울지역의 조선시대 육의전 같은 공상(公商)이 해체된 후 한강을 상징하는 경강상인과 송상(松商)으로 알려진 개성상인이 전국 상권을 형성할 시기에 “개성서(西) 고무제품·직물도매상”을 설립하였고 해방 후 1949년 개풍상사를 비롯하여 호양산업, 대한양회, 서울은행,배아산업, 대한탄광, 동방화재, 대한철강, 삼화제철 등 당시 새롭게 전개되는 새로운 산업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삼성그룹, 삼호그룹에 이어 우리나라 재계 제3위의 대그룹을 축성하셨습니다.

  • 상업과 무역을 거쳐 공업, 그리고 금융이 발전하는 산업화 과정을 따라 사업영역을 망라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사농공상의 전통적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전문적인 사업가가 없는 시대에 선도주자의 역할을 수행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의 기업가들은 모든 분야에 다각화하고 이를 선단식 조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후 박정희 정부의 공업화 정책에 의한 경제개발정책이 시작되면서 이 두 분은 대한유화를 창설하여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다른 대그룹과 달리 제조업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고 원료인 석유가 한 방울도 생산되지 않는 한국에서 기술집약적 장치산업인 석유화학 업종을 선택하신 것은 대단한 도전정신을 발휘하신 결과였습니다. 대한유화를 창업한 지 이미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많은 대기업들이 아직도 비관련 업종들로 다각화와 선단식 그룹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설립 회장님들의 선각자적인 지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사업은 장사로부터”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선진 산업국가들도 역사적으로 농업, 상업, 공업, 서비스업(금융)의 순서로 국가의 부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무역으로 해양국가가 된 나라들이 공업선진국이 되는 원리입니다. 두 선각자의 기업가 기질과 능력은 그 과정을 통해 철저하게 체화된 것입니다. 특히 이정호 회장님은 이정림 회장을 모시고 대한유화를 창업할 때부터 석유화학 공장의 입지, 건설, 투자, 기술, 대정부관계, 사내외 경영, 특히 판매와 무역업무 등 국내와 해외 모든 분야에서 회사의 실질적인 성장과 혁신의 경영책임을 도맡아 50년의 역사를 창조하신 주역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순규 회장님이 1991년 대한유화에 입사한 다음, 200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선대회장님께서는 2011년 타계하실 때까지 명예회장으로 함께 회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기간에 대한유화는 안정적인 여건에서 공장확장과 기술혁신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로 생산의 원료 다변화와 미래지향적인 품종개발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향상시켜 올 수 있었습니다.

  • 대한유화는 창립 회장님들의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되었으며 그 핵심은 십대 소년시기부터 가슴에 간직한 무지와 가난으로 몰락한 조국을 부강한 나라로 재건하는 애국애족의 산업보국 정신입니다. 이를 위해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유경쟁 체제하의 정도경영을 채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정림, 이정호 회장님들은 기업이 정부, 가계, 소비자와 함께 한 나라의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 중 하나로서 가치창출의 경제적 책임 이외에 윤리적, 법률적, 박애적인 차원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셨습니다. 1959년 3·1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인재양성을 위한 3·1문화상을 제정하고 학술상(인문사회, 자연과학), 예술상, 기술상을 수여하는 한편 학생들의 장학금제도와 기타 사회발전에 필요한 지원을 시작하였습니다. 3·1문화상에 예술상을 포함시킨 설립자의 안목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된 그 시절에도 국가사회 발전은 학문과 산업, 그리고 문화예술이 함께 필요하다는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이 사회적 사업을 전담할 3·1문화재단을 설립하였으며 대한유화가 창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단운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3·1문화상은 민간기관이 수여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으로서 금년에 61주년 시상식을 거행한 바 있습니다.

  • 대한유화의 창업 50년은 설립자들이 과거 어려운 상황에서 배우고 닦은 기업가정신 위에서 헌신적 노력과 도전을 토대로 이룩한 성공의 역사적 유산입니다. 창립 50년을 축하하는 오늘은 지금부터 다가오는 100년을 향한 또 하나의 새로운 창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대한유화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4차 산업혁명과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충격이 가져올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기 위해 강인한 저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한유화의 회장님 이하 모든 임직원이 선대 회장님들의 도전정신을 본받아 과거 50년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시각과 전략으로 혁신적인 지속가능한 대한유화를 창조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년 6월 2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워 회원 김기영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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