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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

제3공장 건설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제3공장 건설

  • 제3공장 건설계획 수립

    1976년 무렵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1차 석유파동 이후 계속된 불황에서 벗어나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계경기의 흐름도 매우 긍정적이어서,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일부 품목을 제외한 석유화학 제품의 연평균 수요가 10~20%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에 비추어보면, 당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가지고 있는 생산능력으로는 국내 수요조차 충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1976년 기준으로 국내에는 연산 1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과 25개의 관련 계열공장이 가동 중이었다. 정부가 연산 35만 톤 규모의 여천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서두른 것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석유화학산업을 내수는 물론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같은 수요 증가 전망에 따라 1977년 7월 대한유화는 생산설비를 증설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PP 연산 6만 톤 규모의 제3공장을 신설하여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제3공장이 신설되면 부족한 국내 수요를 충당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 국내 기업들이 수입에 의존하게 될 물량을 대한유화가 공급하게 될 것이므로 연간 약 3,120만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당초 HDPE 공장으로 계획했다가 PP/HDPE 병산공장으로 준공된 제2공장이 사실상 PP 제품 위주로 가동되면서 PP 수급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대한석유공사의 나프타분해공장 증설이 지연돼 에틸렌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자,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HDPE보다는 PP 위주로 가동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변수가 제3공장 건설 계획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PP보다는 HDPE가 훨씬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마침 대한석유공사(지금의 SK종합화학)의 나프타분해공장이 계획보다 2년 늦은 1978년 준공될 예정이었으므로, HDPE 생산을 위한 에틸렌 수급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고심 끝에 대한유화는 제3공장을 연산 3만 5,000톤 규모의 HDPE 공장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제3공장에 적용할 생산공정은 미국 아모코(Amoco)사의 공법인 기존의 Amoco Process에 자체 기술진이 개발한 기술을 혼합한 방식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해외로부터 별도의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자체 기술로 해결하여 기술도입에 따른 비용과 특허료 부담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술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 제3공장 준공 및 증설

    대한유화는 제3공장을 건설하는 데 외자 778만 4,000달러와 내자 1,000만 달러 등 총 1,778만 4,000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공장 건축비용은 물론 공장에 설치할 기기장치와 현지 제작기기, 배관공사, 전장공사, 공기구 및 비품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었다.
    원료조달의 경우 주원료인 에틸렌은 대한석유공사에서 일부 조달하고 부족한 물량은 수입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또 헥산 및 메탄올은 대한석유공사와 대성메탄올 등 국내 기업들에게서 조달하며, 촉매와 제품의 개질제(改質劑)인 안정제 등은 국내 개발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수입에 의존하기로 했다.
    공장 건설 및 가동 준비를 마친 대한유화는 1978년 3월 7일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9년 1월 22일 시운전을 거쳐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이상 공기를 단축한 1월 31일 준공했다. 최소한 1년 6개월 이상 걸려야 지을 수 있는 공장을 불과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제3공장 건설공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최단기간 공사라는 기록과 함께 최소 자금으로 건설한 공장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제3공장은 1980년과 1986년에 reactor 1대씩을 추가로 증설하며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해 나갔다.
    한편, 대한유화는 제3공장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수요에 조기 대응하면서 생산설비의 운영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에서 제3공장 준공과 동시에 곧바로 제4공장 건설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 제3공장 건설현장(1978.03.)
  • 제3공장 준공일에 시운전을 해 보이는 이정호 회장(1979.02.)
  • 제3공장 증설작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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