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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의 석유화학산업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외환위기 이후의 석유화학산업

  • 외환위기 이후 석유화학시장의 경기회복

    1997년 12월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부는 IMF 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국민들 모두가 적지 않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1999년 들어 우리 경제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IMF 조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 데다, 소비 및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1999년 중반 들어서는 원화가치 급락과 구조조정 등에 힘입어 수출경쟁력이 살아나고, 동남아시아 경제 역시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엔화강세 현상과 미국 경제의 성장세도 우리 경제가 수출을 통해 활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IMF 체제가 본격화된 1998년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석유화학업계가 1999년을 기점으로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199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미래를 낙관하며 한동안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었다. 많은 업체들이 공장 신·증설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신·증설 사업은 1997년 무렵 완료되었다. 그 결과 1998년 3월 기준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에틸렌 492만 톤, 합성수지 886만 2,000톤, 합섬원료 566만 5,000톤, 합성고무 44만 7,000톤 등의 생산능력을 갖출 만큼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공급능력이 급격히 늘어난 데 비해 국내 수요는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업계는 1990년대 내내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1992년 이후 1997년까지는 수출이 크게 늘어나, 우리나라는 아시아시장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주요한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때부터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전반적인 채산성은 수출 여건과 성과에 크게 좌우되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1997년과 1998년 초 사이에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공장 신·증설 사업이 대부분 완료돼 수급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또 한 차례의 역경과 마주해야 했다. 더구나 이때는 외환위기로 국내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져드는 시기여서, 1998년에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실적은 전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성장과 침체를 오가던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1999년 들어 회복세로 돌아섰다. 비교적 단기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이어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석유화학산업의 회복세는 자동차, 전자 등 전방산업의 수요 증가와 주요 수출시장인 동남아 국가들의 경기회복에 힘입은 바가 컸다. 내수가 증가세로 돌아서며 1997년 수준을 회복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다만 세계적으로 설비 과다증설로 인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져 경쟁이 심화되고 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외환위기와 공급과잉의 여파에서 벗어나는 동안 국내외 석유화학업계는 이전과는 다른 경쟁구도로 변화했다. 1998년에 미국의 다우케미칼과 유니온카바이드사가 합병하는 등 초대형 인수·합병이 잇달아 성사되고, 합성수지 분야에서도 품목별로 전문화가 가속화되는 등 업체들의 대형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한층 뚜렷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원유,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중동 국가들과 중국이 글로벌 석유화학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해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위협했다. 이들은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나섰고, 그 바람에 국내는 물론 글로벌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었다.
    그러자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한 대형화와 전문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나라는 IMF 체제 아래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중이어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기업 상호간의 인수·합병이나 자산매각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시장 판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유동성이 떨어져 부실화된 대림산업과 한화의 석유화학부문이 통합해 여천NCC(주)가 설립되었고, 삼성종합화학은 2003년 5월 프랑스 토탈그룹으로부터 외자를 유치하여 삼성토탈(주)로 합작법인화되었다. 현대석유화학도 2003년 6월 LG화학과 롯데케미칼(당시 호남석유화학)에 인수되었다. 그 후 현대석유화학은 2005년 1월 (주)씨텍, (주)LG대산유화, (주)롯데대산유화로 각각 분할되면서 기존의 법인은 사라졌다.
    이러한 와중에도 1993년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대한유화는 조기에 경영정상화에 성공하여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7월 법정관리가 해제됨으로써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외환위기로 큰 고통을 겪으며 구조조정에 휩싸인 시기에, 대한유화는 오히려 법정관리에서 벗어나는 저력을 발휘하며 재도약에 나설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것이다.
    실제로 대한유화는 외환위기 와중에도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제2의 도약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면모를 보였다. 업계가 대한유화를 주목하게 된 이유였다.

한국경제신문(199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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