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
국내 최초 PP 합성수지 생산공장 준공
제1공장 준공(PP)
대한유화는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석유화학공업단지 완공 시한 내에 PP 공장을 준공하기 위해 종합건설계획을 수립했다. 타 기업 공장들의 건설 일정에 맞춰 동시에 완공하기 위해서는 공기단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한유화는 1970년 11월 건설공사에 착수하고, 대한석유공사가 나프타분해공장을 완공하는 시기에 맞춰 1972년 4월 준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5월부터 2개월간 시운전을 실시하여, 총 18개월 안에 모든 공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공사는 1971년 3월 1일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유화는 별도의 기공식 없이 공사를 시작했다. 이미 1968년 3월 22일에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에서 석유화학공장 건설 합동기공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한유화 PP 공장은 합동기공식이 있은 지 3년여가 지나서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셈이었다.
당시 합동기공식은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비롯하여 상공부 장관, 해외투자자, 실수요자 등 국내외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 날 기공식에는 대한석유공사의 나프타분해공장과 PE, PS(Polystyrene), SM(Styrene Monomer), VCM(Vinyl Chloride Monomer), AN(Acrylonitrile), 카프로락탐, 아세트알데히드, SBR, PP, 메탄올, 알킬벤젠, 무수프탈산 공장, 그리고 유틸리티센터 등이 참여했다.
첫 삽을 뜬 지 4개월이 지난 1971년 7월부터는 시설재가 들어오기 시작해 공사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대한유화는 지하배관 공사는 성흥수도상사·현대건설·경건산업에, 구조 공사는 현대건설에, 건축물과 도로기초 공사는 제일토건에 맡기는 등 각 공사 분야별로 시공업체를 선정하여 공사를 진행했다.
대한유화는 1972년 6월 15일, 착공 16개월 만에 PP 공장을 완공했다. 다른 공장들보다 착공이 늦어졌지만, 면밀한 시공으로 공기를 단축하여 시한 내에 공장을 완공한 것이다. 사업비는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늘어난 약 1,850만 달러의 내·외자가 투입되었다.
대한유화는 완공 보름 뒤인 1972년 6월 30일 시험가동을 시작해 8월 8일 역사적인 첫 제품을 생산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PP 합성수지 생산공장으로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기반을 다진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대한유화는 이 공장을 ‘제1공장’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울산공장 조감도
PP 공장 건설 현장(1971.)
한편,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는 대한유화가 제1공장을 준공한 지 4개월이 지난 1972년 10월 31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준공식을 갖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내·외자 약 2,000억 원을 투입해 추진한 1차 사업 가운데 카프로락탐 등 일부 공장의 공기가 지연되기는 했지만, 나프타분해공장을 비롯하여 LDPE, VCM 등 주요 9개 공장이 완전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는 단순한 공업단지가 아니라 개발도상국으로 나아가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산업시설이었다. 경제개발 2단계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의 성장·발전상을 대변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단지라는 것이다.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가 준공돼,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하던 화학공업의 원료를 국내에서 자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개발도상국이 개발하기는 어렵다고 인식돼온 석유화학공업의 기틀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는 점은 온 국민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원료에서부터 최종제품에 이르는 전 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단지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일본에 이어 동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석유화학단지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울산공장 준공식(1972.06.)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합동준공식(1972.10.)
제1공장 증설(1만 5,000톤)
제1공장이 본격적으로 PP 생산을 시작한 이후 대한유화의 제품은 고객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외국의 경쟁사들보다 늦게 개발되었지만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누린 것이다. 더구나 당초 예상보다 수요가 급증하는 바람에 제1공장은 처음부터 100%의 가동률을 보이며 시장에 안착했다. 특수규격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수요를 충족한다는 점도 고객사들을 만족하게 했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제1공장의 생산능력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유화는 공장 준공 직후 곧바로 증설에 착수했다.
대한유화는 1973년 2월 15일 열린 제3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제1공장에 펠렛타이저(Pelletizer, 제립기) 1기를 추가로 설치하여 생산능력을 1만 5,000톤 증설하고 3만 5,000톤 규모의 HDPE 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이에 따라 1973년 3월 1일 PP 공장 증설공사가 시작되었다. 새로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장의 제조시설 일부와 부대시설을 증설하는 것이어서 시공에 어려움은 없었다. 대한유화는 착공 10개월만인 그 해 12월 31일 증설공사를 완료했다. 이로써 제1공장의 생산능력은 총 4만 5,000톤으로 늘어났다.
이 증설공사에는 시설재 비용과 특허료를 합쳐 외자 193만 2,000달러, 내자 100만 7,000달러 등 총 293만 9,000달러가 투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