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
공장설비 국산화를 위한 노력
기계류 국산화 정책 추진
대한유화는 제1공장과 제2공장을 건설하면서 “정부의 국산화 정책에 부응하여 국산 대체가 가능한 설비는 국산화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각종 장비의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정부가 기계설비 국산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에서 기계공업을 전략산업의 하나로 지정해 중점 육성하고자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기계류 국산화를 통해 자급도를 높이고 장차 주력 수출품목으로 육성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공업을 육성하는 데에는 난관이 많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 1976년까지도 기계공업이 제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불과했다. 전 세계 평균인 40%에 비하면 턱없이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정부가 각종 연구기관과 기업들에게 기계류의 국산화를 장려한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이었다.
정부는 산업현장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기계류의 국산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제4차 및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도 ‘기계공업 육성’을 주요 정책으로 선정해 추진했다. SOC(사회간접자본) 등 각종 Plant 공사가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데다 기계공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기계류 국산화는 그만큼 중요한 과제였다.
대한유화는 정부가 기계공업 육성 및 기계류 국산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 전부터 기계설비의 국산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단순히 사업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기업활동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창업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설비 국산화 노력으로 대통령 표창 수상
기계설비 국산화는 1971년 7월 제1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부터 대한유화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줄기차게 추진한 과제였다. 대한유화는 제1공장은 물론 제2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일괄도급 방식을 지양하고 국산 대체가 가능한 품목은 국산화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여건상 국산화를 시도한 것은 소모품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고가의 주요 기계부품에 대해서도 가급적 사내에서 직접 제작하거나 국내 기업을 통해 조달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고도의 기술집약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은 업종의 특성상 항상 폭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대한유화는 기술적으로 자신 있는 것부터 국산화를 시도했다. 제관용 기자재, 볼탱크(Ball Tank), 배관재 등의 소재를 수입해 국내 기술로 조립·가공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제1공장은 43%, 제2공장은 54%의 국산화를 달성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제2공장의 경우 타워류 5기 전부와 대구경 Pipe 600mm 이상을 전량 국산화하고, 압력용기는 157기 중 98%에 달하는 148기를, 열교환기는 36기 중 22%인 8기를 국내에서 제작하여 국내 기계공업 발전에 밑거름을 놓았다.
수소탱크와 증류탑, 열교환기의 국내 제작을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폭발위험이 크기 때문에 가동 시 재질의 내구성과 기술능력 등을 고려해야 했던 것이다. 특히 내용적 100㎥의 대형 중간제품 저장용 알루미늄 탱크 제작공사는 아르곤 가스를 사용하는 특수용접기술이 필요해 난항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설비의 국내 제작을 추진한 결과 대한유화는 기계산업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동시에 회사 내부적으로도 기술도입비용을 줄이고 관련기술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제2공장의 경우 일본에서 일괄적으로 기술을 도입하는 경우에 비해 약 20%의 비용이 절감되었고, 특히 화학Plant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타워류, 압력용기, 열교환기 등은 도입가에 비해 70% 이하의 가격으로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생산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PP의 경우 원료가격은 일본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제품가격은 평균 11.5%나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HDPE 역시 원료부족으로 가동률이 낮아질 때조차도 일본과 거의 같은 수준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한유화는 이처럼 설비국산화에 노력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창출했다. 이 같은 성과가 기반이 되어 대한유화는 기계공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76년 2월 25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