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
창립 초기 흑자 기조의 정착
공장 가동 4년 만에 매출액 10배 달성
대한유화는 제1공장 건설을 준비할 당시부터 판매계획을 수립해 두고 제품 출하에 대비했다. 공장이 조기에 안정화되어 순탄하게 제품을 생산한다는 전제 아래 생산제품 전량을 판매할 수 있도록 사전에 면밀한 영업전략을 세워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유화는 제1공장이 준공되기 전인 1972년 2월 28일 특허국에 상표등록을 출원했다. 대한유화 최초의 상표로 등록된 이 상표는 회사명에서 딴 ‘유화’와 ‘YUHWA’를 국문과 영문으로 표기한 마크 두 종류였다. 둘 다 마름모꼴의 사각형 안에 원형의 워드마크를 넣은 이미지였다. 마름모꼴대는 청색, 원 바탕은 백색, 그리고 로고는 적색으로 표현했다.
당시 첫 번째 상표등록은 PP 제품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그 후 1991년 4월 9일 HDPE에 대해서도 상표등록을 추가함으로써 모든 생산제품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상품은 회사 창립 2년여 만인 1972년 8월 26일 출하되었다. PP는 다른 합성수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된 제품이지만, 우수한 물성을 갖춘 데다 시장에서의 수요가 나날이 증가한 덕분에 공장 준공 직후부터 100% 가동에 성공하며 대부분의 국내수요를 충족했다.
생산 원년인 1972년에는 PP 1만 1,987톤을 생산하여 1만 250톤을 판매했다. 매출액은 15억 2,35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4만 2,126톤을 생산해 4만 3,224톤을 판매했고, 1974년에는 5만 4,316톤을 생산해 5만 3,920톤을, 1975년에는 5만 9,762톤을 생산해 6만 359톤을 각각 판매했다. 1975년에는 HDPE도 처음으로 1,179톤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매출액은 1974년에 116억 2,650만 원을 기록하여 처음으로 100억 원대를 돌파했고, 1975년에는 154억 500만 원을 달성하는 놀라운 약진을 보였다. 생산 개시 4년 만에 무려 10배의 매출액을 달성한 것이다.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제1공장 가동 첫 해인 1972년에 대한유화는 국내 최초로 PP를 생산·판매하여 국내 석유화학시장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경영수지 측면에서는 15억 5,000만 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1억 8,400만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다행히 판매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면서 공장 가동 2년차인 1973년에는 8억 9,400만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때부터 대한유화는 본격적인 흑자행진을 시작했다.
신설공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흑자를 실현함에 따라 대한유화의 재무구조도 빠르게 개선되었다. 1971년에는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공장 건설에 투자하느라 12월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630%까지 올라갔지만, 영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자본금 증자도 이루어지면서 1975년 6월에는 287%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대한유화는 금융비용의 부담을 좀 더 덜어내고 수익성을 높여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창립 당시 1,000만 원이었던 자본금은 10차례의 유상증자와 1차례의 무상증자를 거치면서 1975년 말에는 4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대한유화는 창립 초기부터 효율적인 생산·판매구조와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춤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