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닫기

통사

3·1문화재단을 통한 사회사업 전개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3·1문화재단을 통한 사회사업 전개

  • 대한유화는 창립 초기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기업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무로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은 3·1문화재단을 통해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졌다. 3·1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대표적인 사업이 3·1문화상과 3·1장학금 제도이다. 3·1문화상과 3·1장학금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에는 재단의 형태를 갖추기 전이었다. 1959년 4월 1일 이정림 회장을 비롯한 이정호, 이회림, 이동준 등 대한양회의 4대 주주가 뜻을 모아 ‘3·1문화상’을 제정한 것이 그 시초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궁핍한 시기여서 문화예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정림 회장 등은 3·1정신을 계승하여 학술과 문화예술의 창달을 기하고 산업현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3·1문화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1960년 3월 1일 제1회 시상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이 상은 학술·예술·기술·근로·사회봉사 부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해당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공로자를 시상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상제도의 하나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능력은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3·1장학금 제도’도 도입했다. 이 장학금 제도는 1961년 4월 전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 798명에게 처음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시작되었다.
    재단의 형태로 발전한 것은 1966년 8월이다. 3·1문화상과 3·1장학금 제도 운영에 뜻을 같이 했던 이정림 회장 등 4인은 이 제도를 항구적인 사회사업으로 발전시 키기 위해, 대한양회가 출연한 3,000만 원을 기본재산으로 하여 ‘재단법인 3·1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 3·1문화재단은 3·1문화상과 3·1장학금 제도를 기본 사업으로 운영하는 한편, 그 외에도 문화·교육·사회등 각 분야의 발전을 위한 기관지원 사업으로 범위를 확대해 활발하게 공익사업을 전개했다.
    1970년에 대한양회가 쌍용양회에 흡수, 합병되고 대한양회를 매각한 이정림·이정호 회장이 대한유화를 설립하면서, 3·1문화재단의 운영은 대한유화가 맡게 되었다. 대한유화는 1975년 5월 3·1문화재단에 2,000만 원의 기금을 추가로 출연하여 재단이 사회사업을 더욱 더 확대하도록 지원했다. 이에 따라 3·1문화재단은 기업이 출연해 운영하는 공익재단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도약하게 되었다.

  • 제2회 시상식에서 기념사를 낭독하는 이정림 이사장(1961.03.)
  • 제8회 3·1문화상 수상자 기념 사진(1967.03.)
top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