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
‘기술경영’을 통한 R&D 역량 강화
연구개발실 신설 및 연구동 개관
기술개발에 대한 대한유화의 의지는 집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연이어 신공장을 건설할 때도 가능한 한 자체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기술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사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술개발에 더욱 더 매진하게 된 것은 촉매(Catalyst, 觸媒)가 큰 역할을 했다.
대한유화가 촉매 연구에 공을 들이게 된 것은 1972년 6월 제1공장을 준공하고 PP 생산을 시작할 즈음에 촉매가 문제로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생산 초기에 중합공정에 사용된 촉매는 촉매 1g당 PP 제품 800g 정도를 중합하는 저활성 수입 촉매(TiCl₃)였다. 그런데 이 촉매는 용해되는 APP(Atactic Polypropylene) 함량이 너무 높아 생산에 어려움이 많았다.
1975년 10월 제2공장을 준공한 이후에는 해외에서 수입한 CR 촉매를 사용하여 HDPE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촉매활성이 낮은데다 파우더 입자가 너무 작고 미세했다. 이 때문에 Reactor에서의 제열(除熱)이 어렵고 파우더 입자 수송에도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다.
대한유화는 PP 및 HDPE 중합공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하고, 촉매 개발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그동안 시험과 소속으로 운영해 오던 촉매개발 담당 연구원들을 주축으로 1977년 3월 연구개발실을 설치하여 촉매 연구에 집중하도록 했다.
연구개발실은 1984년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1983년 10월 3일 착공한 연구동이 1984년 4월 준공된 것이다. 861㎡ 규모의 공간에 최신의 연구 및 실험·검사 장비를 갖춘 연구동이 준공함에 따라 연구개발실은 보다 쾌적하고 능률적인 환경에서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유화는 연구개발실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총 3개 실 조직에 38명의 연구인력을 배치했다. 그 다음해인 1985년 5월에는 정보자료실을 개설하여 국내외의 최신 기술 정보 등을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등 연구개발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촉매기술 자체개발 기반 확보
대한유화는 1977년 연구개발실 설립 이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에 연구개발실은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이루어냈다. 연구개발실이 이루어낸 기술적 성과는 사업화로도 이어져 대한유화의 경영실적 향상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당초 연구개발실을 설치한 동기가 촉매 개발에 있는 만큼, 설립 초기의 연구개발실은 강수철 고문과 정영태 선임연구원(현 대한유화 대표이사 사장)을 주축으로 촉매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촉매 및 중합 관련 기술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여서 촉매 개발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유화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촉매를 개발하지 못하면 고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어렵다는 각오로 촉매 개발을 위해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연구개발실은 설립 첫 해인 1977년 6월 ‘HDPE용 저활성 KPC 촉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수입해 사용하던 일본 치소사의 기존 촉매보다 약 3배 정도 향상된 성능을 갖춘 것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수입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을 목표로 자체기술 확보에 노력한 결과였다. 이를 계기로 대한유화는 촉매기술 자체개발의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대한유화는 촉매 개발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83년에는 KPC 촉매보다 생산성이 높은 고활성 담지촉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수백 건의 촉매합성과 시험중합을 시도하면서 기존 KPC 촉매보다 10배 이상의 활성을 가진 고수율의 초고활성 담지형 촉매 JX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대한유화가 개발한 HDPE 중합용 담지형 촉매는 원가절감과 공정개선에 크게 기여하여, 2018년까지 누적 기준으로 5,6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또 2019년 현재까지 고품질 HDPE를 연간 40만 톤 이상 생산함에 따라 대한유화의 촉매기술 발전과 신제품 개발에도 큰 몫을 담당했다.
한마디로 대한유화 연구개발실은 설립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수입에 의존해 오던 HDPE 중합용 저활성 촉매를 고활성 촉매로 전환하는 연구에 집중함으로써 HDPE의 품질과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과는 대한유화가 ‘뛰어난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술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었다.
국내 최초 부직포용 PP Grade 개발
대한유화 연구개발실은 촉매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연구성과를 창출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촉매 개발과 병행하여 사업화가 가능한 제품·기술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둠으로써 경영성과를 높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연구개발활 동의 기조가 촉매 중심에서 사업화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1984년 4월에 국내 최초로 개발한 부직포용 PP Grade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초 PP 부직포는 천연섬유나 합성섬유에 비해 여과성, 통기성, 성형성이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기능성 부직포로 그 용도를 넓혀가고 있었다. 자연히 시장규모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때에 대한유화는 1981년 11월 국내의 한 부직포 가공회사로부터 분자량 분포가 좁고 MFR(Melt Flow Rate, 용융흐름지수)이 높은 제품의 개발을 요청받았다. 이에 대한유화는 즉시 부직포용 PP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부직포용 PP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가 없어 연구의 진척도는 매우 더딘 편이었다. 특히 분자량분포 조절, 제품형상 등이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
수차례의 실패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념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대한유화는 국내 최초로 우수한 품질의 부직포용 Grade인 PP 5030과 5060을 개발해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품은 초기에는 기저귀용으로 개발되었으나 점차 다양한 용도로 개발되면서 농업용, 공업용, 가정용 등으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의료용과 전자공업용으로도 그 수요가 다양화되었다.
이 밖에도 대한유화는 1984년에 내한성·내충격성이 뛰어난 PP Grade를 개발한 데 이어, 같은 해에 난연성 PP Grade, 고강도의 PP Grade를 잇따라 개발하여 1986년 4월 미국의 시험인증기관인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로부터 UL 규격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 1987년에는 온수·온돌용 PE Pipe를, 1988년에는 HDPE용 고활성 촉매 Process를 개발하는 등 꾸준히 신기술·신제품을 개발하는 업적을 쌓아 나갔다.
국내 최초 고속·광폭 OPP Film용 Grade 개발
1988년에도 대한유화는 국내 최초로 고속 광폭 OPP Film용 PP Grade를 개발해 고도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1986년까지도 국내 OPP 가공업체들은 저속·소폭의 이축연신기계인 일본 도시바(Toshiba)와 미쓰비시(Mitsubishi) 라인으로 OPP Film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OPP Film 포장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기존의 설비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러자 1987년에 OPP 가공업체인 삼영화학이 국내 처음으로 독일 브루크너(Bruckner)사에서 고속·광폭 OPP 라인 1대를 들여와 설치하고, 대한유화에 브루크너 라인에 적합한 원료 개발을 요청해 왔다. 요청업체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유화 연구진이 1988년 9월부터 3개월 동안 삼영화학에 상주하면서 원료 개발을 진행했다. 수십 차례의 테스트를 진행하는 정밀한 연구와 실험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대한유화 연구진은 가공성이 우수하고 물성이 뛰어난 고속·광폭기계에 적합한 PP 5014L Grade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대한유화는 고객사로부터 더 높은 신뢰를 받게 된 것은 물론 ‘기술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이 바라본 대한유화
고객 중심 경영철학의 대한유화
-(주)필맥스 홍성민 전 대표이사
설립년월 | 생산품목 | 매출액 |
---|---|---|
2003년 6월 | BOPP, CPP, SPP 필름 등 제조 | 956억 원(2019년 기준) |
(주)필맥스는 과거 (주)서통의 Film 사업부문을 인수하여 2003년 6월 1일 설립한 BOPP, CPP, SPP 등 플라스틱 Film 제조 및 판매회사이다. 설립 당시만 해도 SK, 효성이 주 거래처였고, 대한유화와는 특수 Grade 일부만을 거래하고 있었다. 이후 대한유화 내수 영업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거래 및 주 협력사로 관계 전환을 요청해 현재까지도 최대 거래처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한유화는 품질, 영업력, 기술 대응력 면에서 독특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특히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석유화학사업 분야에서 대한유화가 50년간 지속가능한 성장을 거듭해온 이유는 기술력과 맨파워, 그리고 고객중심의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필맥스와 같은 Film 가공업체들의 경우 원재료의 수급 및 가격변동에 무척 예민한 편이다. 특히 2000년 중반 유가폭등으로 HOMO PP 가격이 톤당 200만 원을 육박할 때 Film 업계는 도저히 이를 판매가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자칫하면 도산까지 맞이할 수도 있는 큰 위기이기도 했다.
이 때 고객을 생각한 대한유화의 대처는 필맥스에 있어서 매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관계자간 긴밀한 정보공유 및 사전 협의를 통해 원재료 가격을 판매가에 반영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Film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까지 이어졌다. 결국 대한유화는 같이 판매가를 올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전 고지, 그리고 충분한 협의 등을 통해 고객의 저항을 최소화 하는 능력을 보유한 회사인 것이다.
갈수록 시장 경제가 철저한 단기 수익성 위주로 변화하며 각박해지는 상황에서, 고객이 살 수 없으면 공급자도 살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대한유화는 고객과 공생을 통해 창출된 수익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기업이라 생각한다. 부디 100년, 200년 장수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지속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