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
근무환경 개선 및 새 노사문화 조성
근무환경 개선과 복리후생제도 확대
창립 이후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대한유화에게 있어 매우 역동적인 성장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이에 따른 세계경기의 불황 속에서도 잇따라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며 매우 활발한 경영을 펼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대한유화는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이끄는 선도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비약적인 성장의 역사를 쓰는 동안에도 대한유화는 기업경쟁력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았다. 기업경쟁력은 사람 즉, 임직원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임직원의 열정과 헌신을 불러올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갖추는 것이 더 강한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 따라 대한유화는 임직원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복리후생제도를 보완하며 모든 임직원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즐겁고 신명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먼저, 1973년 4월 ‘공장 업무분장 규정’을 제정하여 업무체계를 확립하고, 업무의 범위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여 업무처리의 능률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모든 임직원이 각자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고, 업무범위를 두고 부서 간 또는 개인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업무분장 규정은 조직, 직무서열, 부칙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대한유화는 회사의 경영환경 변화를 반영하여 1975년 2월과 1977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현실에 맞도록 이 규정을 개정했다.
1976년 9월 1일에는 ‘특별병가규정’을 제정하여, 사원이 질병요양을 위해 장기 휴업이 필요한 경우 특별병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원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창립 이래 계속해온 사원주택제공제도를 확대하여, 1980년에는 19평형 34세대, 1988년에는 25평형 35세대, 1989년에는 30평형과 32평형 169세대를 건축해 사원들에게 제공했다.
1984년 12월에는 3억 원의 복지기금을 출연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사우회(社友會)에서 매월 급여의 일부를 적립·운영하여 그 수익금으로 사원들에게 소액대출을 제공하거나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던 데서 벗어나,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사원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노동조합 설립과 노사문화의 발전
대한유화는 노사문화의 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74년 3월 선도적으로 노사협의제도를 도입하며 건강한 노사문화 조성과 노사 상생의 길을 모색해 온 대한유화는 노사협의제도를 통해 노사 간 공동관심사에 관해 폭넓게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상호협력의 문화를 조성해 왔다.
대한유화의 노사문화는 1980년 4월 29일 전국화학노동조합 대한유화 직할분회(대한유화노동조합)가 결성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이날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결성대회를 갖고 시험과 이상식 사원을 분회장(위원장)으로, 안전과 신봉규 사원을 사무장으로 각각 선출했다. 이에 따라 대한유화에 정식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대한유화는 노동조합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각종 현안을 협의하는 전통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설립 2년 만인 1982년 7월 16일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자진해산을 결의했다.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교섭에서 근로조건이나 사원복지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전에 회사가 그 이상의 근로환경을 조성함에 따라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가 줄어들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수년 동안 대한유화는 노동조합이 없는 가운데에도 노사 간의 협력과 상생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나 1987년 산업계 전반에 이른바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노동조합 설립 붐이 일면서 대한유화에도 노동조합을 재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결과 자진해산 이후 6년여 만인 1988년 5월 20일 민경환 사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가운데 노동조합이 재설립되었다. 하지만 대한유화는 노동조합의 재설립 여부와 관계없이 모범적인 노사관계의 전통을 이어가며 상생의 문화를 조성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대한유화는 1979년 3월 10일 ‘노사협조 증진과 공장새마을운동 및 근로자 복지증진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또 1987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에는 이정호 사장이 ‘노사협조 증진 및 현조체제 구축, 근로조건의 자율 개선, 복지증진 등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영광을 안았다.
고객이 바라본 대한유화
35년간의 신뢰와 공생
- (주)사이몬 유병용 상무
설립년월 | 생산품목 | 매출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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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 수도관, 하수관, PE 소방배관, 통신관, 전선관, 파형관, 가스관 등 제조 | 257억 원(2019년 기준) |
‘(주)사이몬’은 1973년 설립된 ‘(주)지주’의 자회사이다. 1996년에 설립되었으며 수도관, 하수관, PE 소방배관, 통신관, 전선관, 파형관, 가스관 등의 제조・판매를 통해 국내외 파이프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내가 (주)지주에 입사했던 1985년 당시 우리의 주 거래처는 호남석유화학(지금의 롯데케미칼)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우리 회사가 필요한 Pipe용 원료 수급 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유화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렸지만, 기존 고객에 대한 최우선 공급정책을 중시하던 대한유화의 영업기조로 인해 첫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어렵사리 첫 거래를 시작하고부터는 고객우선 정책의 혜택을 톡톡히 보며 지난 35년간 최고의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이어오고 있다.
PE80, PE100용 파이프 및 블랙, 옐로우 파이프 전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국내에 한두 곳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중에서 대한유화의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대한유화는 그간 높은 품질과 독보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인간미 있는 영업방식을 통해, 글로벌 공급 부족으로 가격 폭등 시에도 먼저 상황을 설명하고 가격을 협상하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또한 우리 회사와 대한유화는 원료의 구매거래를 주고받는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반상생을 위한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실제로 대한유화는 고유가 시기에 급변하는 시황정보를 고객사들과 공유해 왔으며, 사전 협의에 따라 합리적인 판매가격 결정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동반자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반대로 대한유화가 해외 인증에 필요한 실물 파이프 샘플 제작이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 회사가 적극적으로 도움에 나서며 대한유화를 위해 샘플을 제작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생의 관계가 대한유화와 35년간의 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을 맞이한 대한유화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모습으로 끝없이 성장하길 기원하며, 향후 50년에도 높은 품질과 기술력으로 국내 파이프 시장 발전해 기여해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