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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분해 사업 진출 배경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나프타 분해 사업 진출 배경

  • 1980년대 말의 석유화학산업

    석유화학산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모체가 되는 것은 기초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올레핀계를 생산하는 나프타분해공장(NCC, Naphtha Cracking Center)과 방향족계의 원료를 생산하는 BTX 공장이다. 그 중 나프타분해공장을 가리켜 ‘석유화학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6년 7월 「공업발전법」 제정을 계기로 석유화학사업 진입이 자유화되고 곧이어 정부가 나프타분해 사업 신규 참여업체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새로운 나프타분해 사업 실수요자를 선정하기로 한 것은 국내외 시장에서 에틸렌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시장의 경우, 1981년만 해도 연산 5,000만 톤의 생산능력에 비해 수요는 3,500만 톤에 불과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8년에는 수요와 공급이 5,500만 톤으로 균형을 이루고, 1990년에는 5,700만 톤의 생산능력을 뛰어넘는 5,900만 톤의 수요가 예상되었다. 수급 상황이 역전되는 것은 물론 공급에 비해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 것이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기준으로 국내시장에서 에틸렌 및 프로필렌의 자급률은 각각 81%와 61%에 머물렀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에틸렌의 경우 1990년에도 40만 8,000톤, 1995년에는 16만 8,000톤의 공급부족이 예상되었다. 더욱이 에틸렌 생산업체인 대한석유공사와 호남에틸렌 등이 다운스트림 분야에 참여함에 따라 에틸렌의 공급부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1987년 현재 울산지역에서는 대한석유공사가 연산 35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석유공사 내부적으로 연산 8만 톤 규모의 PE공장과 연산 10만 톤 규모의 SM공장을 병행 건설한다는 계획이어서 공급가능 물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기존 업스트림 업체들이 다운스트림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며 에틸렌 계열공장을 계속 증설하는 중이어서, 국내시장에서 에틸렌의 공급능력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나라 밖의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세계적으로 에틸렌의 공급부족 추세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생산시설을 감축하거나 수출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 수입물량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수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전용부두를 확보해야 하고, 영하 103도 이하의 저온탱크와 냉각시설 등 수입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물론, 특수운송선박과 고가의 선임(船賃)으로 인한 원가상승요인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는 석유화학 분야의 수급안정을 기하고 나아가 석유화학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자 나프타분해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 시장분석 및 사업성 검토

    에틸렌의 공급부족이 우려된다는 시장 전망은 대한유화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자칫 회사가 필요로 하는 원료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거나 혹은 비싼 가격으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한유화가 나프타분해 사업에 진출하기로 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대한유화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나프타분해공장을 직접 건설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당시 대한유화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의 소요량이 연간 13만 톤과 24만 톤에 이르고 있었다. 업계 전반에서 에틸렌 계열공장을 경쟁적으로 신·증설하는 상황에서 이만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면 나프타분해공장을 직접 건설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또 나프타분해공장을 건설한다면 원료생산에서부터 제품생산에 이르기까지, 즉 업스트림에서 다운스트림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되어 국제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여천석유화학단지와 울산석유화학단지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도 나프타분해공장 건설을 계획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대한유화가 20~3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을 건설하면 울산석유화학단지도 에틸렌 60만 톤 규모의 여천석유화학단지와 비슷한 규모를 갖출 수 있게 되어 양대 석유화학단지의 균형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접한 석유화학업체들에게서 갑작스럽게 원료부족 현상이 발생할 경우 적시에 공급하는 완충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말하자면, 국내시장에서의 수요 증가에 따라 적정한 시기에 에틸렌 등을 공급할 수 있는 보완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국내 석유화학시장의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회사의 성장·발전 측면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 측면에서 국내 석유화학산업 전체의 상황도 고려한 것이다.
    나프타분해공장을 건설하기로 방침을 세운 대한유화는 시장상황과 사업성 여부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시장에서 에틸렌 가격은 1989년 2월 기준으로 톤당 447달러였다. 이는 국제가격의 2/3 수준에 불과해 국제경쟁력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더구나 향후 수년 내에는 국제원유 가격이 급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으므로, 한동안 이 같은 가격대를 기반으로 강한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설혹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원화절상 등의 요인이 발생해 원래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그 폭이 크지만 않다면 국내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국제수지 측면에서도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1992년을 기준으로 할 때 나프타분해공장 건설에 따른 국제수지 개선효과는 2억 7,700만 달러로 추정되었는데, 이 중 원료 수입, 원리금 상환 등 외화비용 1억 3,170만 달러를 제하더라도 순국제수지 효과는 1억 4,53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울산공장을 건설한 경험과 관련 기술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다면 건설과정 전반에 걸쳐 높은 능률을 기대할 수 있고, 국산화율 향상, 외화 절약, 공기 단축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적은 비용으로도 고효율의 공장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유화는 고도의 기술과 훈련된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공장 건설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 신규 나프타분해 사업자로 선정

    검토 결과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대한유화는 나프타분해 사업에 진출하기로 최종 확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공장부지는 온산공업단지 내의 미조성 부지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조성하기로 했다. 온산공업단지는 울산석유화학단지에 인접한 울주군 온산읍 일대의 국가산업단지로, 197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1986년에 1차 준공된 제4의 석유화학단지이다.
    대한유화는 회사의 원료 조달 상황을 고려하여 이곳에 에틸렌 기준 연산 20~3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산된 에틸렌은 자체 소비를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 이 같은 구상을 토대로 대한유화는 1987년 2월 17일 나프타분해공장 건설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나프타분해 사업 신규사업자 선정 주무부서인 상공부에 제출했다.
    신규 나프타분해 사업에는 대한유화를 포함하여 럭키금성그룹의 럭키화학, 한국화약그룹의 한양화학, 롯데그룹의 호남석유화학, 금호그룹의 금호석유화학, 호남에틸렌, 유원건설 등 7개 기업이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저마다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7개 기업이 각축을 벌인 결과, 1987년 5월 25일 대한유화는 여천지구의 호남석유화학과 함께 나프타분해 사업 신규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상공부는 대한유화가 20년 가까이 단일사업에 집중하면서 수직계열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등 석유화학산업 구조개선에 기여도가 높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외자도입 없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데다 타인자금 의존비율이 낮아 경영안정성이 높으며, 공장입지를 이미 확보하고 원료의 조달방안까지 확정하는 등 신규 투자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었다. 신규 참여하는 일부 업체들과는 달리 대한유화는 실수요자라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로 선정된 대한유화는 1988년 1월 사내에 올레핀 사업부를 신설하여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온산공장 인가를 받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88년 11월 22일 무난히 정부의 인가를 받아 공장 건설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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