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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

전문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훈련 체계화
프롤로그 제1장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창립 1970 1975 제2장 PP/HDPE 전문기업으로의 비약적 성장 1976 1988 제3장 위기극복 및 지속가능경영 기반 구축 1989 1998 제4장 사업의 다각화와 글로벌화 1999 2009 제5장 ‘종합석유화학회사’를 향한 제2의 도약 2010 2020 에필로그

전문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훈련 체계화

  • ‘5개년 중장기 교육계획’ 수립

    대한유화는 인재를 중시한다. 아무리 훌륭한 설비와 시스템을 갖췄다 해도 결국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한유화는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발전과 자아실현을 성취할 미래창조적 대한유화인을 만든다’는 기본이념 아래 전문인재를 육성하는 데 큰 비중을 두어 왔다.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의 모델은 흔히 ‘인재상’으로 구체화된다. 대한유화는 ‘개인과 조직의 비전 달성을 위해 핵심역량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발전과 자아실현으로 최고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창조적 대한유화인’을 인재상으로 설정하여 대한유화가 추구하는 인재의 모델을 정립했다. 동시에 인재상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훈련의 목표를 ‘리더인, 전문인, 창조인, 세계인’에 두고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했다.
    1988년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은 한마음연수대회, QC교육훈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온산공장 건설에 착수하게 되자 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5개년 중장기 교육계획(1989~1993)’을 수립했다.
    당시 석유화학시장은 대기업들의 투자가 몰리면서 과잉투자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는 시점이었다. 더욱이 대기업들의 투자규모로 봤을 때 채산성 악화 현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장기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대한유화는 미래의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고 성과지향적인 전문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이러한 관점에서 수립한 중장기적인 인적자원 개발전략이 바로 5개년 중장기 교육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대한유화는 먼저, 경영환경과 경영전략, 기존 교육훈련시스템의 장단점 등을 분석했다.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벤치마킹도 실시했다. 이를 기초로 교육과정을 크게 계층별 교육과 직업훈련, 기타 교육훈련으로 나누고 세부과정을 재정비했다. 동시에 구체적인 교육훈련 계획은 회사의 경영현황과 사업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연 단위로 수립해 실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계층별 교육훈련은 회사의 수평·수직적 조직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면서 각 계층의 특성과 니즈에도 부합하는 리더의 능력 향상 세미나, 조직관리능력 향상과정, 현장관리능력 Skill-up 과정, 노사 핵심요원 연수, 개인 및 조직활성화 과정 등으로 체계화되었다.
    또 직업훈련은 회사의 기술체계에 따라 직원의 직무기술교육과 직업훈련생의 양성교육으로 나눠 운영토록 했다. 특히 직업훈련생의 경우 직업훈련원을 설립하여 체계적으로 우수 기술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대한유화는 팀별 직무교육, 품질·환경교육 등의 특별교육과 외국어교육, 통신교육 등 평생교육시대에 부응하는 교육과정을 더욱 확대 운영하고, 사외 위탁교육도 활발하게 운영하여 직원들의 전문성을 더욱 높여가기로 했다.

  • 사내 직업훈련원 개원(1995.04.)
  • 제1기 훈련원생들 실습 현장
  • 노동부 인가 직업훈련원 개원

    1995년 1월 3일 대한유화는 우수한 기능인력을 양성하여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회사의 대외경쟁력 향상과 사내교육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내에 ‘직업훈련원’을 설립했다. 근로자의 능력을 개발하고 생산기술직 우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취지였다.
    직업훈련원 설립을 위해 대한유화는 타사의 교육훈련시스템을 조사하고 회사의 실정에 맞는 교과과정을 선정했다. 이와 함께 효과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올레핀사업팀이 사용하던 건물에 40명 정도가 동시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500㎡ 규모의 공간을 확보하여 실습장, 강의실, 교사연구실을 설치했다.
    1995년 1월 27일 대한유화는 「직업훈련기본법」에 따라 서울지방노동청에 사업계획 승인신청을 하여 2월 27일 사업승인을 받았다. 이어 3월 24일에는 기초교육교재와 실기교재 등을 자체 개발하여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승인을 받았다. 정식 교재 외에도 20여 종의 자체 기술도서를 개발하여 보조 교재 또는 참고 도서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기초실습 등에 활용할 32점의 교육 기자재도 확보했다.


  • 모든 준비를 마친 대한유화는 훈련생을 공개 모집했다. 1995년 3월 6일부터 10일간의 모집기간에 원서를 접수한 지원자 수는 164명에 달했다. 대한유화는 1차 서류심사,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제1기 훈련생 30명을 선발했다.
    대한유화는 1995년 4월 3일 정식으로 직업훈련원을 개원하고, 제1기 훈련생 입소식을 거행했다. 훈련생들은 입소식을 시작으로 6개월 동안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같은 해 9월 29일 수료식을 가졌다. 대한유화는 수료생 가운데 21명을 11월 1일자로 채용하여 입사하도록 했다.
    이후에도 직업훈련원은 석유화학 전문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실속있게 구성돼 있고 성적이 우수한 인재는 사원으로 채용하는 특전이 주어진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해 직업훈련을 원하는 지역사회 청년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 두 명의 명장 탄생

    전문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1995년 9월 5일 대한유화에서도 명장(名匠)이 탄생해 전문인재의 롤 모델 로 주목을 받았다.
    명장이란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 1986년 부터 시행한 제도로, 독일의 마이스터(Meiste)제도처럼 산업현장에서 기능인의 외길을 걷고 있는 최고 숙 련 기술자를 선정하여 시상하는 제도를 말한다. 최고의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기능인에게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상이라 할 수 있다.
    대한유화에서는 수지생산부 박영일 차장이 1995년에 처음으로 명장에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장과 노동부장관의 명장증서를 받았다. 이어서 1996년에도 수지생 산부 이성훈 차장이 또 다시 명장으로 선정돼 대한유화의 제2호 명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유화는 두명의 명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 대한민국 명장 수상(박영일 차장)(1995.09.)
  • 대한민국 명장 수상(이성훈 차장)(19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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